DANDAE TRADITION MARKET
단순한 쇼핑을 넘어 사람과 교류를 경험하는곳, 명장마을
2층한복 및 의류
서른 세 살 되던 해 남편과 전 재산 천만 원을 들고 경북 고령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농사만 짓던 내가 장사를 하게 될 줄은 그리고 수줍음 많은 남편이 속옷장사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곳 상가를 분양받아 장사를 시작한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이 상가는 말 그대로 사람으로 넘쳐났다. 정신없이 밀려드는 손님들로 밥도 못 챙겨먹을 정도로 바쁜 좋은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돈 버느라 아이들은 제대로 돌봐줄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그때 그 기반으로 지금껏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해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요즘 상황이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30년이 넘게 이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 저력이 그 기반에서 왔다. 감사한 일이다.
나는 일단 친해지면 상대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좋은 물건을 바가지 없이 정직한 가격으로 성실하게 판 덕분에 아주 오랫동안 찾아주시는 손님이 많다. 어떤 손님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도 혹시 한국에 일이 있으면 ‘아직 있을까?’ 궁금해 찾아오기도 하신다. 그런 순간마다 ‘믿음을 주는 장사를 했구나.’라는 생각에 참 보람되고 기쁘다.
인터넷으로 물건이 많이 팔리는 요즘, 특히 속옷은 인터넷이나 홈쇼핑으로 대부분 구입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어쩔 때는 가게를 지키는 것보다 아르바이트를 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나가야 할 텐데…… 걱정이 많기는 하다. 낙천적인 성격이 이럴 때는 참 편하다. 그런 걱정을 다독이며 다시 스스로에게 힘을 주니 말이다.
우리 때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남편과 자식들에게 잘 하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점에서는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집에서 편히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요즘도 평일엔 장사하느라 휴일인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느라 잠시도 집에서 쉬지를 못한다. 이제는 늙었는지 집에서 조용히 쉬고 차분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더 욕심을 내서 시골에 조그맣게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흙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어렸을 때 추억이 자꾸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 장사의 ‘장’자도 몰랐던 박태순, 이젠 프로 장사꾼이 다 되었네. 훌륭해.”